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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히브 12,2)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신앙의 길로 나아갑시다. facebook twitter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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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CAT 제1권

 - 제1부 믿을 수 있는 근거

 - 제2부 그리스도교의 신앙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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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CAT 제4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제1부 그리스도의 삶에서 기도가 지니는 의미

"474. 예수님은 기도를 어떻게 배우셨나요?

예수님은 기도를 가정과 회당에서 배우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통적인 기도의 한계를 극복하셨습니다. 그분의 기도에서 오로지 ‘하느님의 아드님’만이 가질 수 있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관계가 드러납니다. [2598-2599]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셨던 예수님은 당시의 여느 유다인 아이처럼 이스라엘 민족의 의례와 기도 방식에 익숙해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열두 살 때 성전에서 겪으신 일(루카 2,41-52 참조)에서 드러나듯이, 그분 안에는 배워서 습득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과의 근원적이고 심오하며 유일무이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른 세상을 바라셨고, 하느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은 그 다른 세상의 한 부분이기도 하셨습니다. 이후 사람들이 예수님께 기도하고 그분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며 그분의 은총을 청하게 되는데, 그러한 모습들이 이미 그때부터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478. 하느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리라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생전에 당신에게 치유를 간청했던 많은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아 계시고, 우리의 청원에 귀 기울이시며, 우리의 청원을 하느님에게 전달하십니다. [2615-2616, 2621]

오늘날 우리는 유다교 회당장이었던 야이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분은 그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의 어린 딸은 병들어 죽었고, 더 이상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딸을 고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마르 5,21-43 참조). 확실하게 입증된 치유력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표징을 드러내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절름발이와 나병 환자, 눈먼 이가 예수님에게 청한 것은 헛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의 모든 성인들도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에게 어떻게 청원했는지, 또 하느님은 자신들의 기도를 어떻게 들어주셨는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자판기가 아닙니다. 그분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간청을 들어주실지는 그분에게 맡겨야 합니다."



"486. 우리가 하느님에게 청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를 샅샅이 알고 계시는 하느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곤경에 빠져 그분을 향해 울부짖고 간청하며 한탄하고 그분의 도움을 청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도를 통해 그분과 겨루기를 바라십니다. [2629-2633]

물론 하느님이 우리를 돕기 위해 우리의 청원이 필요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순전히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청하려 하지 않고 청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안에 갇힌 사람입니다. 청하는 사람만이 마음을 열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분에게 돌아섭니다. 청하는 사람은 하느님에게 돌아옵니다. 이처럼 청원 기도는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인간을 이끕니다."



※ 그리스도인의 기도 자세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앞에 엎드리는 몸짓을 통해 자기 삶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그들은 기도할 때 합장하거나 두 팔을 벌립니다. 또한 성체 앞에서 무릎을 굽혀 경배하거나 무릎을 꿇고 조배합니다. 그들은 서서 복음을 들으며, 묵상할 때에는 앉습니다.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자세는 경외심을 표현하고(상급자가 들어올 때 사람들이 일어서는 것처럼), 동시에 조심성과 준비 태세(즉시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를 드러냅니다. 선 채로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해 두 팔을 벌리는 모습은 본래의 찬양 자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앞에 앉아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음속에 간직한(루카 2,51 참조) 말씀을 곰곰히 되새기고 묵상합니다.

무릎을 꿇음으로써 인간은 하느님의 위대함에 복종하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하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느님 앞에 엎드림으로써 인간은 그분께 흠숭을 드립니다.

손을 합장함으로써 인간은 흩어졌던 마음을 모으고, 하느님께 예속되어 있음을 표현합니다. 합장한 손은 본래 청원 자세이기도 합니다."



"506. 기도는 일종의 독백 아닌가요?

기도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가 ‘나’에서 ‘너’로 중심을 옮겨 가며 자기중심적 태도에서 벗어나 개방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되게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과, 그분은 때때로 우리가 바라거나 기대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기도를 많이 해 본 사람들은 종종 기도하기 전과 기도한 후가 다르다고 이야기합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슬픔을 위로받거나 낙심했던 마음에 새 기운을 얻는 등 자신의 바람이 채워졌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곤경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오히려 더 깊은 불안감에 빠질 수도 있고, 평온히 쉬기를 바라지만 임무를 부여받을 수도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진정한 만남은 하느님과 기도에 관한 우리의 기존 관념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508. 기도할 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거나, 심지어 기도에 대한 반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도할 때 드는 분심이나 내적인 공허감, 무미건조함, 심지어 기도에 대한 반감은 기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감정입니다. 이런 감정들을 성실하게 견뎌 내는 것 자체가 이미 기도입니다. [2729-2733]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도 오랫동안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성녀가 죽기 얼마 전, 어느 날 밤에 셀린느 언니가 그녀를 방문했습니다. 셀린느는 데레사가 자기 손을 묶어 놓은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뭐하고 있어? 잠을 자야지.” 그러자 성녀가 대답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잘 수가 없어요. 그래서 기도하고 있지요.” “예수님께 뭐라고 말씀드렸는데?” 언니의 물음에 성녀가 말했습니다. “전 그분께 드릴 말씀이 없어요. 그저 그분을 사랑할 뿐이지요.”"



"509. 기도는 현실 도피가 아닐까요?

기도하는 사람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현실 전체를 보는 눈을 갖게 됩니다. 그는 현실을 견뎌 낼 힘을 하느님에게 직접 받습니다.

기도는 아주 먼 여정과 어려운 도전에 맞서기 위한 에너지를 무료로 얻을 수 있는 주유소와 같습니다. 기도는 우리를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에 더 깊이 관여하게 합니다. 기도는 시간을 뺏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아 있는 시간을 배가하며 본질적인 의미로 그 시간을 채우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