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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히브 12,2)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신앙의 길로 나아갑시다. facebook twitter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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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CAT 제1권

 - 제1부 믿을 수 있는 근거

 - 제2부 그리스도교의 신앙 고백

 YOUCAT 제2권

 - 제1부 거룩한 표징

 - 제2부 교회의 일곱 성사

 YOUCAT 제3권

 - 제1부 성령이 행하는 것

 - 제2부 십계명

 YOUCAT 제4권

 - 제1부 기도가 지니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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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CAT 제1권 무엇을 믿고 있는가?
제2부 그리스도교의 신앙 고백

"30. 하느님은 오로지 한 분이시라는 우리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성경의 증언에 따르면 하느님은 오로지 한 분만 계시고, 논리 법칙을 따르더라도 하느님은 한 분밖에 계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습니다. [200-202, 228]

하느님이 둘이라면, 하나는 다른 하나를 제한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둘 중 어느 누구도 영원하거나 완전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둘 중 어느 누구도 하느님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근본적인 하느님 체험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
예언자들은 가짜 신들을 멀리하고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호소합니다.
“나는 하느님, 다른 이가 없다.”(이사 45,22)"



"38.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요?(성령 강림 대축일 관련 문제)

성령은 거룩한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신적인 품위를 지닙니다. [243-248, 263-264]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실재를 발견할 때 우리는 성령이 활동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고”(갈라 4,6), 그 영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통해 내적인 기쁨과 평화와 자유를 발견합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마 8,15) 또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때 받은 성령의 힘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48.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 헌장 <하느님의 아드님>) [293-294, 319]

사랑 말고는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과 명예가 드러납니다. 그런 까닭에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그분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창조 사업의 관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모든 피조물과 함께 자신의 현존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



"49. 하느님은 이 세상과 나의 삶을 이끌어 주시나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신비로운 방식으로 하십니다. 그분은 당신만이 아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완성해 나가십니다. 그분이 지으신 것은 잠시도 그분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302-305]

하느님은 역사적으로 큰 사건들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 삶의 자잘한 일들까지 영향을 끼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자유가 제한되거나, 우리가 그분의 영원한 계획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8) 하느님은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좋고 나쁜 모든 일 안에, 심지어 고통스러운 일들과 무의미해 보이는 우연 속에도 존재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인생이라는 삐뚤빼뚤한 선 위에서도 반듯하게 쓰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치워 버리신 것과 우리에게 선물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를 강하게 만들거나 우리를 시험하는 그 모든 도구들은 그분의 의지가 드러난 방식이며 징표입니다."



"51.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데도, 왜 악을 저지하지 않으신가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하느님이 악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오로지 그것으로부터 더 좋은 일이 생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309-314, 324]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어둡고 고통스러운 신비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도 당신 아버지에게 여쭈셨습니다.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악과 관련된 많은 일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합니다. 하느님은 전적으로 선하시므로, 결코 악의 원흉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훌륭하게 창조하셨지만, 세상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격변과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며 세상은 최종적인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소위 물리적인 악이 존재합니다. 선천적인 장애나 자연 재해가 이에 해당되는데, 하느님의 자비로움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악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반해 도덕적인 악은 자유를 남용한 결과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소년병과 자살 테러, 강제 수용소와 같은 ‘지상의 지옥’은 대부분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결정적인 문제는 ‘이렇게나 많은 악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선하신 하느님을 믿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감정과 이성을 지닌 인간이 이 세상의 삶을 어떻게 견뎌 낼 수 있겠는가?’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악에서 시작된 것은 없으며 악으로 끝나는 것도 없음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하느님은 최고의 악으로부터 최고의 선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최후 심판 때 모든 불의不義에 종지부를 찍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도래할 세상의 삶에는 더 이상 악이 존재할 자리가 없으며, 고통도 끝날 것입니다. "



"64. 하느님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랑이며 공동체의 원형이신 하느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심으로써, 그들이 함께 당신의 본성을 드러내는 모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369-373, 383]

하느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셔서, 인간이 다른 성과의 만남을 통해 충족감과 온전함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남성과 여성은 전적으로 동등한 존엄성을 지니고 있지만, 남성성과 여성성의 창조적인 계발을 통해 하느님의 완전성을 각각 다른 관점에서 표현합니다. 하느님은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시지만, 아버지다운 모습(루카 6,36 참조)과 어머니다운 모습(이사 66,13 참조)을 보여 주셨습니다. 인간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통해, 특히 남자와 여자가 “한 몸”(창세 2,24)을 이루는 혼인 공동체를 통해, 하느님과의 합일(궁극적 온전함)이라는 행복의 일부를 맛볼 특권을 누립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신의가 있는 것처럼 부부도 사랑의 신의를 지키려 애씁니다. 부부의 사랑은 하느님의 본성을 닮아 창조적인데, 그것은 혼인을 통해 새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



"65. 교회는 동성애자들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요?

교회는 창조 질서에 따라 남자와 여자는 서로 보완해 줄 수 있는 특질이 필요하고 상호 관계를 지향하게 되어 있으며, 그를 통해 새 생명을 낳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이유로 교회는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의 성적 취향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2358-2359]

부모의 결합을 통하지 않고 이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본래 인간의 본성과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이성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성적 결합의 결실을 놓치는 것은, 동성애로 기울어진 여러 사람들에게 뼈저린 체험이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종종 이례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당신에게 이끄십니다. 다시 말해 결핍과 상실과 상처라도 그것들을 수용하고 긍정하는 경우에는, 모든 것을 좋게 만드시고 창조보다는 구원을 통해 더욱 위대한 모습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품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발판이 됩니다."


"72. ‘예수’라는 이름은 어떤 뜻을 지녔나요?

히브리어로 ‘예수’는 ‘하느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430-435, 452]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2) 모든 선교사들은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반드시 전했습니다."



"82.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르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인가요?(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관련 문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름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아드님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495, 509]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성모님이 누구인지에 대해 논란이 벌어졌을 때 ‘하느님을 낳은 여인(그리스어로)’이란 칭호는 성경을 정통으로 해석한 의미였습니다. 성모님은 그저 한 인간을 낳으셨을 뿐이며 그는 태어난 후 하느님이 ‘되신’ 것이 아니라, 성모님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하느님의 참된 아드님이셨습니다. 따라서 위 질문의 관건은 일차적으로 성모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참인간이며 동시에 참하느님이신가의 여부입니다."



"109. 예수님의 승천은 무엇을 뜻하나요?(주님 승천 대축일 관련 문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한 첫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 계신 곳에 도달했고 영원히 그곳에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 아드님을 통해 하느님은 인간다운 모습으로 우리와 가까이 계십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은 요한 복음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요한 12,32) [659-667]

신약 성경에 따르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당신 제자들과 특별히 가깝게 지낸 40일간의 시간은 그분의 승천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기간을 마무리 지으며 그리스도는 온전한 인간성을 지니신 채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성경은 ‘구름’과 ‘하늘’이라는 표상을 통해 이 사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인간은 하느님 안에서 있을 곳을 찾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하느님 곁에 계시며, 언젠가 그곳으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이란,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지금 여기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21. ‘교회’란 무엇인가요?

교회는 그리스어로 ‘불러 모은 사람들’을 뜻합니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을 믿고 있는 우리 모두는 주님이 불러 모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고, 우리는 그분의 몸입니다. [748-757]

우리가 성사를 받고 하느님 말씀을 듣게 되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도 그분 안에 있게 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들이 예수님과 이루고 있는 친밀하고 개인적인 생활 공동체를 성경에서는 늘 새로운 표현으로 묘사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서는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신부’, ‘어머니’, ‘하느님의 가족’, ‘혼인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에 비유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멀리하는 ‘공공 기관’이나 ‘제도 교회’에 불과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발생하는 잘못과 결함에 화가 나더라도 교회를 결코 멀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최종적으로 교회를 선택하셨고, 그분은 교회 구성원들의 모든 죄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저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우리 인간들 가운데 계신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156. 영원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영원한 삶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시작됩니다. 그것은 죽음을 뛰어넘는 것이며 끝이 없습니다. [1020]

사랑에 빠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상태가 더 이상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라고 요한의 첫째 서간은 이야기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은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8)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영원하십니다. 그리고 사랑은 신적인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영원합니다. 우리가 사랑 안에 머문다면, 하느님의 끝없는 현존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



"158. 하늘나라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하늘나라는 사랑의 순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우리 영혼이 사랑하면서 일생 동안 찾았던 하느님으로부터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모든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하느님에 대해, 그리고 하느님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습니다. [1023-1026, 1053]

사랑스러운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이나, 엄마의 미소를 영원히 간직하려는 듯이 엄마와 눈을 맞추는 아기를 보면 하늘나라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순간만이 영원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